콘텐츠로 바로가기대메뉴 바로가기

무풍면

본문시작

무풍면 지명유래

무주군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91.23㎢이다. 동쪽으로 경북 김천시, 남동쪽으로 경남 거창군, 북서쪽으로 설천면과 접한다. 대덕산(大德山)에서 발원하는 남대천의 물줄기가 삼도봉에서 발원한 미령천과 원촌에서 합해져 설천 쪽을 향해 흐르고 있다.

전국의 행정구역을 13도(道)로 구획하고, 그 밑에 부(府)군(郡)도(島)를 두고 말단행정기구로 읍면을 둔 3단계 조직이었다.
1914년 12부 220군 2,522면으로 조정되었다.대덕산(大德山)에서 발원하는 남대천의 물줄기가 삼도봉에서 발원한 미령천과 원촌에서 합해져 설천 쪽을 향해 흐르고 있다. 면의 중심인 현내리(縣內里) 부근은 화강암이 침식풍화된 해발고도 400~900m의 분지이고, 그 주위는 해발고도 700~1,000m의 산지이다. 주곡 농업 외에 고랭지채소엽연초 등이 생산된다. 현내리에서 무주김천거창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가 분기된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속했었고 현재도 경상도와 인접하여 언어풍속이 영남권에 가깝다.

삼한시대에는 변진의 감문국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으로 치소(治所)였다. 신라의 변방(邊防)이던 무산은 백제의 적천현과 국경을 이루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무풍(茂豊)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성종 때에는 신라권역의 영남권에서 백제권역인 호남권으로 편제되어 강남도 남원부 진례현의 속현(屬縣)이 되었으며, 명종 때 실시된 감무제(監務制)에 따라 무풍현의 감무가 주계현의 행정까지 관할하였고 한 때는 병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 태종 14년, 전국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풍과 주계가 통폐합되어 무주(茂朱)라는 새로운 지명이 생기면서 치소가 주계로 옮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무풍은 무주현에 딸린 면(面)단위의 행정구역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무풍의 행정구역은 풍동면(豊東面. 현재의 현내리, 지성리, 금평리)과 풍남면(豊南面. 현재의 철목리, 증산리, 은산리)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옛 이름을 되찾게 된다. 즉 무주군이 6개 면으로 나뉘게 되는데, 무풍은 풍동과 풍남을 통폐합하고 종전의 횡천면(橫川面, 지금의 구천동덕지리 지역)에 속해 있던 덕동과 오정동을 편입시키면서 옛 명칭을 다시 살려 무풍면이 된 것이다. 1414년 무풍현이 폐지된 후, 500년 만에 옛 지명을 되찾은 것이다.

조선 후기 참위설(讖緯說)과 풍수지리설을 신봉하던 술가(術家)들의 말에 의하면, 무풍은 십승지지(十勝之地)14)의 하나이다. 특히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에 나온 것으로, 임진왜란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풍으로 찾아와 난리를 피하고 정착하기도 하였다. 즉 무풍은 술가들이 복지(卜地)로 선망(羨望)하던 곳이다. 한편 현내리에는 명례궁(明禮宮)이 있었다. 2001년 현재, 무풍면의 행정구역은 8개 법정리(法定里), 행정상 17개 리, 55반(班), 43개 자연마을로 구획되어 있다.

담당부서 :
자치행정과 행정
연락처 :
063-320-2232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결과보기